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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vy Sweetness, Ash Like Frost 二

향밀침침신여상 드림


HEAVY SWEETNESS + ASH LIKE FROST

향밀침침신여상 드림




"야! 까마귀! 까마귀!"


대체 뭘 먹었길래 정신을 잃은걸까.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보니 망고인 것 같은데, 가운데의 씨 부분을 제대로 제거 안 한 상태인 것 같았다. 목 쪽에 두드러기 같은게 조금씩 올라오고, 기도가 막혀 있는 것이 심각해 보여서 바보 천치도 무슨 증상인지 단번에 알아낼수 있었다. 얘 이거 망고 알러지 있어서 망고 씨에 쥐약이구나. 신선도 알러지가 있었네? 엄마야.


"야! 야! 하필 알러지 있는 과일을 쳐먹고 난리냐! 님은 그냥 인간이었으면 즉사다 멍청한 까마귀야."


선력으로 다스릴 수는 있는데, 나는 그냥 요정따위라 고고하신 상선들처럼 손가락 하나만 놀리면서 간단하게는 못 한단 말이지. 적어도 내 선단에 있는 기가 네 몸속으로 직접 닿아야 되는 일인데 이건 진짜 끔찍한 방법밖에 없단 말이야.


"너 진짜 안일어나면 나한테 입술 다 물어 뜯길 줄 알아. 어?! 야?!"

"......"

"좀 일어나! 망고 알러지때문에 돌아가시는 신선이 어딨어?!"

"......"

"......난 몰라. 진짜 몰라. 나중에 나한테 남녀가 유별나니 어쩌구 저쩌구 따지려 들면 진짜 망고 씨 오조 오억개는 투척해주마."


그대로 직진. 이건 인공호흡일 뿐이야. 인공호흡이야. 그저 목숨 구하려고 하는 입술 문대기일 뿐. 아무렇지도 않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아니다. 녀석의 입술은 무척이나 말캉거리고 따뜻했다. 빌어먹게도.





-



다행히 녀석의 증상은 빨리 가라앉았지만 내 영력은... 영력은... 백년 치가 한꺼번에 날라갔다. 개새끼... 는 아니고 새새끼인가. 과일 먹고 산다는 새가 망고 씨에 알러지가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씨에는 독성이 강하게 있긴 하지만 보통 사람은 저렇게 주변 과육을 한 입 문다고 해서 바로 사단이 나는 건 아니거든.


"......"


녀석이 눈을 뜰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냥 문을 닫고 나와버렸다. 오늘도 침대를 저 녀석에게 내어 줘 버렸네. 다행히 수경 안은 항상 따뜻한 편이라 밖에 걸어놓은 해먹에서 담요 하나 덮고 자면 딱 좋은 정도였으니 그다지 짜증이 나거나 하진 않았다.


[봉황은 또 언제 찾고 환체봉령은 또 언제 얻고...]


그저 막막했을 뿐. 가끔씩 이렇게 하늘을 수놓은 별이나 보며 술을 마시는 것도 나쁘진 않은 생활 같았으나 나는 어디까지나 이 곳 사람이 아니었다. 고작 '김여주'로 산 건 이십 여년이고 금멱으로 산 건 사천 년이 넘어가는데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 곳 사람이었다. 가끔씩 두려웠다. 이 곳이 점점 더 좋아지면,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어-이. 미인 아가씨, 또 술을 퍼마시네. 주중선(酒中仙)이 꿈이야?"


 익숙한 장난기 어린 목소리에 나는 손에 있는 맥주잔을 앞의 탁자에 내려놓았다. 푸하군, 제발 기척 좀 내고 나타나던지 해. 술 뿜을 뻔 했으니까. 영 마땅치 않다는 내 반응에 상관은 커녕 탁자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자신도 한 잔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유세를 떤다. 그래, 이 브루잉 마스터가 한 잔 내어주마. 고작 4천년도 안 된 정령이 술을 퍼마시는 것을 알면 방주들이 뒤집어 지겠지만, 나는 술은 포기 못한다. 옥수수알 튀겨서 만든 팝콘에 맥주 한잔을 어떻게 포기해?


"너는 진짜 타고 났단 말이지. 술도 빚어, 열매도 맺어, 뭐든지 뚝딱뚝딱 만들어."

"그래-"

"그러니까 내가 장가 가면 안될까?"

"그-게 아니고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진짜."


난 비혼주의자야, 이 물뱀아. 내가 던진 팝콘을 맞아 속상한 척 하는 이 물뱀 신선은 내가 푸하군(君)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붙여 준 신선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많은 이 뱀 신선에게 원래 일개 정령인 내가 존대를 해야 하지만 딱히 하는 꼴을 보아 하니 그럴 마음이 손톱만큼도 생기지 않아 반말을 툭툭 내밷게 된다. 그도 딱히 신경쓰지는 않는 것 같고.


오래전 수경을 뚫고 들어온 괴물한테서 날 구해준 적이 있었던 푸하군은 가끔씩 내가 주조하는 맥주가 생각나면 불쑥불쑥 나타나 마시러 오고는 했다. 보리로 빚은 술이라고?! 첫 만남부터 술친구였던 우리는 시간 떼우기가 심심할때 부를 수 있는 최적의 상대였다. 할 일 없는 잉여들.


"잠깐, 집에 뭘 숨겨놨길래 기운이 이렇게 흉흉해?"

"응?"

"네 집 안에서 느껴지는 선력, 대체 뭐야? 너 미쳤어? 저런 걸 집에 들여놓게?"

"...... 다 죽어가길래 살렸는데?"

"...아이고 두야. 아이고오 두야-!"


푸하군은 잔을 던지더니 나의 집 안으로 곧장 뛰어들어갔다. 그러고는 침대에 누워 있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비명을 질렀다. 화...화...! 화...! 계속 화! 소리만 해대면서. 대체 이 까마귀가 누구길래 저렇게나 질색팔색하며 눈이 커진걸까. 얘가 천계의 그 봉황이라도 되면 몰라,


"화신이 왜 여기있어?!?!?!?!?!"


와, 나 계탔네. 이렇게나 퀘스트가 쉽게 깨질 줄이야. 


-


언우가 소리를 지르는 통에 깨어난 저 '봉황'은 경악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에게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 덩달아 눈이 커진 나에게 이내 시선을 돌려 눈썹을 까딱거렸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부른 거 아니야! 그냥 가끔씩 술 먹으러 쳐들어오는데 내가 막질 못해..."


그런데 화신이라는 이 까마귀는 나에게 시시비비를 따지는 대신에 나를 자신 쪽으로 끌여당겨 뒤로 숨겼다. 마치 푸하군에게서 나를 보호하려는 모양새처럼. 내가 그의 등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옆으로 이리 저리 고개를 내밀자 그것마저도 제지시켰다. 아니 망고 드시고 머리도 도신 건가 왜 이리 과민반응이래?


"저번에 나 구해준 적 있어서 그래. 가끔씩 술 한잔씩 하는 사이라고! 안 위험해. 장난이 좀 심할때가 있긴 한데 막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야!"

"......"


내 말에도 못 믿겠다는 듯 언우에게 살기를 뿜어내고 있는 까마귀는 꽤 열이 받는 표정이었는데,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저렇게 열이 뻗쳤는지 나는 도통 모르겠어서 내 팔을 잡고 있는 걸 슬그머니 풀어내려고 손가락으로 애써 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천계에서 퇴출된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젠 화계의 여인에게도 장난질을 치러 온 건가, 언우?"


미안한데 내가 남녀상열지사에 빠삭하다 못해 통달한 사람이여. 쌍팔년도보다 후진 방법으로 여자 꼬시는 저 물뱀한데 내가 넘어갈란? 그건 그렇고, 요 봉황은 왜 저 물뱀이 떠돌아 다니는 지 아는 거네? 푸하군, 당신 설마 전과자 그런거였어?


"까마귀, 너 쓰러진 거 생각 안나? 이렇게 힘 갈무리 못하다가 다시 팍 간다?"


까마귀라고 부르자 마자, 내 앞의 새는 굳어버리고 푸하군의 얼굴은 웃음을 한껏 참느라 일그러졌다. 까... 까마귀... 까마..귀... 푸훕...! 봉황의 등 뒤에 숨어서 고개만 내밀고 영문을 모르는 내 두 눈과, 박장대소를 하는 푸하군의 목청만이 고요했던 공간을 한껏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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